[황당여행상식] “Sorry”를 입에 달고 사는 영국인… 잘못하지 않아도 사과하는 이유

부딪히지 않았는데도 “Sorry”… 사과보다 배려에 가까운 영국식 표현

부탁·거절·질문에도 등장하는 한마디… 갈등을 줄이는 ‘언어의 윤활유’

영국을 여행하다 보면 유난히 자주 듣게 되는 단어가 있다. 바로 “Sorry”다. 길에서 살짝 스쳐도 “Sorry”, 상대방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했을 때도 “Sorry?”, 심지어 자신에게 잘못이 없는 상황에서도 먼저 “Sorry”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처음 영국을 방문한 여행객이라면 ‘도대체 왜 이렇게 사과를 많이 하지?’라는 의문이 생길 정도다.

 

하지만 영국인이 사용하는 “Sorry”를 우리말의 ‘미안합니다’와 완전히 같은 의미로 받아들이면 영국의 독특한 대화 문화를 놓치기 쉽다. 영국에서 Sorry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공식적인 사과뿐 아니라 상대방을 배려하고 어색한 상황을 부드럽게 만드는 일종의 사회적 표현으로 폭넓게 사용된다.

 

대표적인 장소가 런던 지하철이다. 붐비는 열차에서 다른 사람 앞을 지나가야 할 때 “Sorry”라고 말하거나, 상대가 길을 막고 있어 비켜 달라고 부탁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먼저 “Sorry”라고 말을 꺼내는 경우가 흔하다. 잘못해서 사과한다기보다 ‘잠시 불편하게 해서 미안하지만 지나가겠습니다’라는 의미에 가깝다.

 

흥미로운 상황도 있다. 누군가 자신과 부딪혔는데 오히려 부딪힌 사람이 아닌 상대방까지 “Sorry”라고 말하는 경우다. 누구의 잘못인지 따지기보다 순간적으로 발생한 불편함을 빠르게 해소하고 서로 갈 길을 가려는 태도라고 볼 수 있다. 작은 충돌을 갈등으로 확대하지 않는 일종의 생활 속 대화 기술인 셈이다.

 

“Sorry”는 상대방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을 때도 등장한다. “Sorry?”라고 말하면 ‘죄송합니다’라기보다 “다시 말씀해 주시겠어요?”라는 의미로 쓰인다. 모르는 사람에게 질문하거나 직원을 부를 때 “Sorry, could you help me?”처럼 대화를 시작하기도 한다. 이때 Sorry는 상대의 시간이나 공간에 들어가기 전에 양해를 구하는 역할을 한다.

[사진: 런던 거리에서 가벼운 상황에도 먼저 미안함을 표현하며 상대를 배려하는 영국인의 일상적인 모습을 담은 장면. 챗gpg 생성]

이러한 표현 방식에는 영국 사회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예의와 개인적 거리감이 반영돼 있다. 상대방에게 지나치게 직접적으로 요구하거나 감정을 드러내기보다는 완곡한 표현을 통해 불편함을 최소화하려는 것이다. ‘Excuse me’, ‘Please’, ‘Thank you’와 함께 ‘Sorry’가 일상적으로 자주 등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모든 영국인이 항상 Sorry를 사용하는 것은 아니며 지역이나 세대, 개인 성향에 따라 차이가 있다. 또한 중요한 잘못에 대한 진지한 사과와 일상적인 예의 표현으로서의 Sorry는 상황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따라서 영국인이 Sorry라고 말했다고 해서 반드시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고 해석해서는 곤란하다.

 

여행자가 알아두면 유용한 점도 있다. 영국에서 누군가 “Sorry”라고 말한다면 무조건 심각한 사과라고 받아들이기보다 당시 상황과 표정, 말투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길을 비켜 달라는 신호일 수도 있고, 다시 말해 달라는 요청일 수도 있으며, 단순히 상대방을 배려하는 인사말에 가까울 수도 있다.

 

영국인의 “Sorry”에는 흥미로운 문화적 코드가 숨어 있다. 잘못했기 때문에 하는 사과가 아니라, 서로 불편해지지 않기 위해 먼저 건네는 말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여행에서 외국어를 안다는 것은 단어의 뜻만 아는 것이 아니다. 그 나라 사람들이 언제, 왜 그 말을 사용하는지 이해하는 것까지가 진짜 언어 여행이다. 영국 거리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들리는 “Sorry”. 짧은 한마디 속에는 상대방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예의를 잃지 않으려는 영국식 소통 문화가 담겨 있다.

 

 

 

이기남 정기자 기자 ds3huy@kakao.com
작성 2026.08.21 12:07 수정 2026.08.21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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